2012년 4월 4일 수요일

바둑이게임 삥끼

손자병법에  허즉실지 실즉허지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의 뜻은 허(虛)한 것은 실(實)한 것으로 보이게 하고 실(實)한 것은 허(虛)한 것으로 보이게 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아군의 형세에 허점이 있을 때는 상대에게 거짓으로 그 허점을 튼튼한 것처럼 보이게 하고, 반대로 아군의 형세에 허점이 없고 강할 때에는상대에게 거짓으로 약한 것으로 보여 혼동케 만든다는 것이다.

한가지 일화를소개하기로 한다.

조금 오래된 일이다. 언젠가 필자는 도봉산에 올라간 적이 있었는데, 그곳은 산 입구에 들어서면 우측으로 산이 있고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물줄기가 보이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흔히 우리가 약수터라고 부르는 곳도 있어서 식수로도 사용되는 곳이 있었다. 따라서 도봉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은 그 물을 마시고 가거나, 통을 들고 와서 담아가기도 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약수터로 흘러 들어가는 물줄기는 근방의 식당에서 식수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라 등산객들이 많이 붐비거나 하는 때는 식당에서 물을 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식당 측에서는 매우 불편해 하며 귀찮아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필자도 당시에는 도봉산에 자주 올라갈 때여서 산에 갈 때는 언제나 그곳에 들려 물을 마시고 나서 올라가고는 했었다. 그리고 언제나 사람들의 뒤에 줄을 서 있다가 물을 마시고는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필자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산에 오르니 항상 많은 사람들로 붐비던 그 약수터에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왜 그런가 하고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그 약수터에는 다름 아닌 '소독중 먹지 못함'이라는 푯말이 붙어 있었다.

즉, 이 푯말 때문에 등산객들이 얼씬도 못했던 것이다. '소독 → 독 → 죽음' 이런 생각은 순식간에 드는 것이고 바로 죽음을 암시하는데 어떻게 물을 마시겠는가? 하지만 필자는 이런 문구를 보면서도 잠시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과연 '소독이란 무엇일까? 물 소독?'

흔히 '정수(淨水)'라는 말은 쉽게 들을 수 있는 것이지만 '물 소독'이라는 말은 매우 낯선 단어다. 물론 물 소독이란, 수도국에서 염소(鹽素)를 가지고 상수물을 만들기 위해 물을 소독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약숫물 소독을 위해 정부에서 일부러 나와 소독을 한다는 말인가? 물론 그렇지는 않았다.

따라서 필자는 그 약수터 주변을 살폈고 결과, 모든 것은 예전과 같았다. 여전히 물은 바위틈에 박힌 파이프에서흘러나오고 아래에는 커다란 물통이 받혀져 있었으며 작은 바가지 몇 개와 가까이 보이는 숲... 다만 한가지 바뀌어져 있는 것은 '소독중 먹지 못함'이라는 경고용 푯말 하나였다.


하지만 필자는 매우 목이 말랐었고 갈증이 심했다. 그리고 결국, '소독중 먹지 못함' 이라는 말은 뺑끼(거짓말)라는 것을 곧 알아차리게 되었다. 다시 말해, 식당 측에서 식수로 사용하기 위해 끌어다 놓은 샘물이 등산객들로 인해 붐비고 따라서 식수로 사용하기가 힘들어지자 몰려드는 사람들을 쫓기 위해 소독을 한다고 가짜 푯말을 세워두고 물을 마시지 못하게 해두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소독중이라는 물을 누가 마음놓고 마시겠는가? 하지만 필자에게는 조금 괴짜인 면모가 있어 목숨을 걸고라도 그 물을 마셔보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필자는 그 경고 푯말이 100% 뺑끼일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던것이다. 왜냐하면, 정말 독이 들어있거나 진짜 소독중이었다면 아마도 사람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보조시설물이라도 설치했을 테니까.

그리고 경고문도 그렇게 허술하게 하지 않고 공식적으로 최소한 근처 파출소장혹은 관리인의 명의라도 서명해 놓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와 같은 것은 아무 것도 없이 그저 경고 푯말만 달랑 있다는 것은 누군가가 그 물에 접근하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 일부러 만들어 놓은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아무런 거리낌없이 작은 바가지에 물을 받아 꿀꺽꿀꺽 달게 마셨다.

역시나 예전과 다름없이 시원하기 이를 데 없는 물맛이었다. 필자가 그 물을 마시는 순간, 엉터리 경고 푯말을 세워둔 식당 주인은 자신의 뺑끼에 여지없이 실패한 것이다. 여기서 필자는 그토록 심했던 갈증을 단숨에 날려버린 달콤한 물맛보다는 내 자신이 게임 선수로써 엉터리 뺑끼를 체포했다는 것으로 그 상쾌함이 더욱 컷다.

위의 상황은 바둑이 게임을 세상사에 그대로 적용한 예이기는 하지만, 세상사의 원리 그 자체를 바둑이 게임에도 적용할 수 있다. 위의 예에서는 독이 들어있을 지도 모르는 물을 마시기 위해 하나밖에 없는 목숨도 서슴지 않았지만, 사실 바둑이 게임에서는 확신이 서면 돈이든 목숨이든 상관없이 확실하게 던질 줄 알아야 진정한 승부사(갬블러)라고 할 수 있다.

이후, 필자는 게임을 하면서 위와 비슷한 상황에 부딪히면 '과연 이 물은 마실 수 있는 물이냐? 아니면 마실 수 없는 물이냐?' 그리고 '진짜 소독하는 중일까? 아니면 뺑끼일까?' 이렇게 생각하며 상대방 선수의 자세를 예의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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